흐릿하고 선명하게도, 바닥 위에 접착제, 2018
싱크대 아래에서는 지난 세입자가 살다 간 흔적도 발견되었다.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여전히 끈끈한 테이프 자국 같은 것들 말이다. 나는 굳이 닦아낼 마음이 들지 않았다. 그 경험은 전시장 바닥에 접착제를 이용한 설치로 만들어졌다. 처음에는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던 글자들이, 무심하게 오가는 관객들의 발자국에 의해 천천히, 하지만 차근차근 드러난다.
그런 기울어짐, 무언가 새는 느낌, 끈적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보면 불안감 같은 것이 내재되는 모양이다. 안온해야 할 집의 시간들은 절망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묘하게 조급하고 초조한 느낌으로 변질됐다. 느리면서도 확실하게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그런 것 같아 어딘지 안심도 되었다. 그러면서도 그렇게 안심하는 자신이 불안했다.
4월 16일의 봄날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. 매 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선명하게 새겨졌다. 여전히 우리는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. 하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을 것만 같은 나날들이다.